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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_좋은 영화라고 하기 좋은 영화.

lovet 2026. 5. 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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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프터썬》을 보며 느낀 나의 답답함과 지루함은 이 영화를 관객들이 공통으로 느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명확한 사건 사고가 터지는 일반적인 서사 구조에 익숙하다면, 별일 없는 휴양지의 일상을 100분 가까이 지켜보는 것이 저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저 시간에 내 딸이를 찍은 그동안의 비디오를 봤어도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그 속에는 이 영화 못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차라리 진짜를 찍은 다큐니까요. 이 영화도 순간순간 아니 대부분 장면에 있어서 연출이 돋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적어도 50분 이상을 관객과 호흡하는 짜여진 구조가 아닌 거라면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출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능 있는 배우들에게 구체적인 대사를 주지 않고 상황만 잘 설명하면 자연스러운 연출은 잘 나오게 되고 칭찬은 배우에게 가지 않고 감독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문제는 장면장면이 관객과의 리듬 속에서 함께 흘러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이 글은 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애프터썬》은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ᅠ남우주연상(폴 메스칼)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최종 수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영국 독립 영화상 7관왕 등 전 세계 주요 시상식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해합니다. 심사위원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고 비평가들이 '올해의 영화'로 꼽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에두르는 방식' 은 영화를 보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아빠와 딸의 사소하고 특별할 것 없는 대화와 물놀이, 식사 장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ᅠ영화 후반부에 성인이 된 소피가 등장하기 전까지 관객은 이 영상이 '누구의 기억'인지, '왜 보여주는지'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합니다. 파편화된 정보로서ᅠ아빠 캘럼의 슬픔이나 고통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거나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등 아주 미세한 균열로만 제시됩니다. 이것은ᅠ마지막 5분의 파괴력을 과시하기 위한 영화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저는 느꼈습니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들 중에는 마지막 장면에서 흔히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이나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좋은 영화라고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좋은 영화라고 하기 좋은 영화입니다. 

 

섬세한 연출이지만 산발적이기에 적어도 나에겐 지루하게 느껴졌던 초중반의 장면들이 사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빠와의 마지막 기록'이었다는 사실이 체감되는 순간, 앞선 모든 평범한 일상이 비극으로 뒤바뀝니다. 어릴 땐 몰랐던 아빠의 고통을, 아빠와 같은 나이가 된 딸이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보며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관객의 개인적인 기억과 맞닿으며 강력한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저에게ᅠ이 영화는 '인내'를 요구하는 영화로서, '상실을 겪은 후 남겨진 기록을 뒤늦게 복기하는 감각' 그 자체를 체험하게 하는 작품이지만  과연 끝까지 볼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 현대의 영화 성정에는 적어도 저에게는 맞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기록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인생 영화'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서 관객의 인내심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가 저는 현학적이며 이기적으로 느껴집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관객과의 약속인데, 그 약속의 전제 조건이 '이유 없는 인내'라면 그것은 대등한 소통이라기보다 일방적인 강요에 가까워 보일 수 있습니다.영화가 관객에게 최소한의 이정표나 동기부여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제작자의 오만함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설명 없이 머무르라는 요구는 관객의 귀한 시간을 담보로 한 도박과도 같습니다. 감독은 모든 맥락을 알고 찍고 편집하지만, 관객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던져집니다. 이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 자체가 생략된 영화는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5분의 보상을 위해 90분을 의문 속에 보내야 한다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 나쁜 거래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초반에 편하게 보고 있으면 뭔가 나올 것이라 약속이라도 해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영화 내내 관객을 붙잡아둘 '지금 이 순간의 매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영화로서의 직무유기라는 평가를 저는 내립니다. 어떤 영화들은 관객이 느끼는 감동보다 감독 본인이 추구하는 미학적 완결성을 우선시합니다. 이런 경우 관객은 영화의 주체가 아니라 감독의 실험을 지켜보는 관찰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평론가들은 하이에나처럼 이런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치환하며 자신들의 욕망 또는 위선의 주머니를 채우는 건 아닐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은유와 상징도 어느 정도 토대가 있어야 기능합니다. 《애프터썬》처럼 서사의 뼈대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방식은, 그 코드를 해석할 준비가 된 소수에게만 문을 열어두는 폐쇄적인 태도라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영화의 가치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평론가들이 찬사를 보낸다 해도, 그 과정이 관객에게 고통스럽거나 이기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해당 관객에게는 실패한 소통입니다. (진심으로 마지막 장면 이전까지도 너무도 좋았던 관객 분들은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현대 영화가 관객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본질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많은 중간 평가자들, 메시지 리더들(평론가들)에 의해 침묵의 나선이론(집단이 두려워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는 이론)이 작용해 많이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이 또한 저의 개인적 추측임). 모든 영화가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갈등이 고조되며, 관객을 몰입시키는 사건이 적절히 배치되어야 한다는 서사적 관점을 세게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아무라 자기 영화가 '이야기'가 아닌 '상태'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보는 관점이더라도. 《애프터썬》 주인공의 일상을 아주 느리게 오랜 시간 보여줌으로써 시간이 많은 부루주아 관객만이  그 휴양지의 공기, 나른함, 그리고 아빠의 미세한 우울을 함께ᅠ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공평한 처사라 생각합니다. 

 

전문 비평가나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반 관객보다 인내심이 강해서라기보다,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Show, Don't Tell)'의 정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영화가 대사나 자막으로 "나는 슬프다" 혹은 "이것은 이별 여행이다"라고 설명할 때, 이 영화는 낡은 비디오 화면의 질감이나 기승전결의 구조를 벗어난 멋들어진 구조 브레이킹의 양태를 보여주며 아빠의 구부정한 뒷모습만으로 그 모든 비극을 암시했기 때문입니다. 평론가들은 이러한 영화를 보며 "앗싸~ 지루하니 일반 관객은 잘 견디지 못 하겠군. 내가 차별화될 수 있는 좋은 영화야. 난 참고 봐야지!!" 하며ᅠ절제의 미학을 고도의 연출력으로 평가하겠지만, 이것은 숨김의 속임수일 뿐  관객에게는 '불친절함'이나 '지루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당연한 결과일것이라 저는 주장합니다. 

 

영화가 관객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자기만족적인 예술 영화의 함정에 빠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예술은 아주 좁고 깊은 구멍을 파서, 그 끝까지 도달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폭발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애프터썬》은 바로 그 '좁은 문'을 선택한 영화인 셈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제안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소중하지만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잠시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 무작정 인도한 후 90분 간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설명을 파편적으로 늘어놓은 후 다단계 물건을 파는 강요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도가 착하고 좋은 영화임은 틀림 없습니다. 이런 영화를 나쁜 영화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떠신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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