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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본국사(혼코쿠지) VS 본원사(혼간지)

lovet 2026. 2. 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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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사와 혼코쿠지는 완전히 같은 곳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우리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본국사가 되고, 일본식 독음으로 읽으면 혼코쿠지(ほんこくじ)가 됩니다. 교토에 위치한 이 사찰은 일련종의 대본산으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조선통신사 일행이 교토를 방문했을 때 공식적인 숙소로 지정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신유한과 아메노모리 호슈가 이곳에서 만나 성신지교의 정신을 바탕으로 시문을 주고받으며 학문적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혼간지(本願寺)는 일본 정토진종의 본산으로 본국사(혼코쿠지)와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종파와 역사를 가진 사찰입니다. 교토에는 동쪽의 히가시혼간지와 서쪽의 니시혼간지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보유한 종파 중 하나이고. 조선통신사와의 인연을 살펴보면 본국사와 마찬가지로 혼간지 역시 사절단의 숙소로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니시혼간지는 건축물 자체가 매우 화려하여 국보로 지정된 비운각 등이 유명하며 당시 통신사 일행에게 일본 건축미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본국사의 국(圀) 자는 당나라 측천무후가 만든 글자로 본래 나라 국(國) 자의 고체 중 하나이며 사찰의 높은 격을 상징합니다. 본국사는 일련종의 대본산으로 1253년 니치렌 성인이 가마쿠라에 세운 법화당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후 교토로 옮겨지며 황실의 기원사가 되었고 특히 1719년 조선통신사의 제술관 신유한이 머물며 일본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와 성신지교의 정신을 나눈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교토 중심부인 로쿠조 지역에 거대한 사역을 자랑했으나 1971년 현재의 위치인 야마시나구로 이전하며 규모가 다소 변했습니다.

 

본원사(本願寺)는 아미타불의 근본적인 서원을 뜻하는 혼간(본원, 本願, ほんがん)에서 유래했으며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부처의 자비로운 약속이 담긴 절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정토진종의 본산인 이곳은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서본원사인 니시(서)혼간지(西本願寺, にしほんがんじ)와 동본원사인 히가시(동쪽)혼간지(東本願寺, ひがしほんがんじ)로 나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친란 성인의 묘소에서 시작된 이 사찰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막강한 종교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에도 시대에는 조선통신사의 숙소로 활용될 만큼 그 위상이 높았습니다.

 

혼간지(본원사)와 혼코쿠지(본국사)의 거리는 8키로 정도 됩니다. 차로 20분. 

 

교토에 위치한 본국사(혼코쿠지)는 일본 불교 일련종의 4대 본산 중 하나로 꼽히는 매우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1253년 니치렌 성인이 가마쿠라에 세운 법화당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1345년 광명천황의 칙명에 따라 교토의 로쿠조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황실의 보리사로서 최고의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막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수많은 부속 사찰을 거느린 거대 사찰로 번영하였고,

특히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교토에 들어올 때마다 공식적인 숙소로 사용되면서 한일 외교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습니다.

1719년 조선의 선비 신유한이 이곳에 머물며 아메노모리 호슈와 성신지교의 정신을 나누었던 기록은

해유록을 통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당시 이 사찰은 양국 지식인들이 시와 문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문화를 깊이 탐색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하던 학문적 길항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본국사는 1971년 교토 중심부의 개발과 여러 사정으로 인해 현재의 위치인 야마시나구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과거 로쿠조 시절의 웅장했던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유물과 기록을 소중히 보존하며

과거의 소통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통신사 일행이 남긴 필사본과 시서들입니다. 제술관 신유한을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이 일본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며 즉석에서 써 내려간 시문들과 서첩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메노모리 호슈와 신유한이 주고받은 시들은 두 나라 지식인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길항하고 어우러졌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입니다.

또한 통신사 일행이 본국사에 기증하거나 남기고 간 기물들도 전해집니다. 조선에서 가져온 병풍이나 도자기, 그리고 통신사 사절단의 행렬을 그린 그림판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단순한 예술품을 넘어 당시 조선의 수준 높은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사찰 경내에는 통신사 방문을 기념하는 비석과 당시 숙소로 사용되었던 객실의 기록이 남아 있어 물리적인 공간 자체가 하나의 유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이지치 노리코 교수는 이러한 유물들이 가진 텍스트와 맥락을 분석하여 지배의 역사가 아닌 소통과 신뢰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고 문의 러브티 kwawoo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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